조선 철종 시대, 탐관오리들의 수탈이 극에 달한 그 시절을 배경으로 한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는 백성들이 스스로 칼을 들고 일어서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단 하나였습니다. "이 분노, 나도 안다." 웨스턴 무비의 리듬을 입은 조선 활극의 미장센〈군도〉를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이 영화를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분명 조선 시대 사극인데, 화면을 채우는 리듬감과 편집 호흡은 영락없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식 웨스턴 무비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미장센(mise-en-scène)이란 카메라 앵글, 조명, 배우의 동선, 세트 구성 등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 요소를 연출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그 장면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결정하는..
2024년 국내 개봉 액션 영화 중 마동석 주연작의 누적 관객 수는 500만 명을 넘기며 다시 한번 '마동석표 장르'의 흥행 공식을 증명했습니다. 솔직히 처음 예고편을 봤을 때 "또 비슷한 설정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보고 나서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에 제가 좀 당황했습니다. 성난 황소. 장르 쾌감 — 단순함이 무기가 되는 순간〈성난 황소〉는 수산시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남자의 아내가 인신매매 조직에 납치되면서 시작됩니다. 플롯 자체는 단 한 줄로 요약됩니다. '아내를 찾아라.'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는데, 이 단순함이 오히려 강점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영화 장르론에서 말하는 원초적 서사 구조, 즉 '위협 → 분노 → 응징'의 3단계 내러티브는 관객의 감정 이입을 최단 거리로 끌어올리는 방식입니다. ..
SNS 메신저 한 줄이 사람 하나를 죽일 수 있다는 걸, 영화 〈찌라시: 위험한 소문〉은 아주 냉정하게 증명해 보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 저는 단순한 범죄 스릴러를 기대했는데, 보고 나서 꽤 오랫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무심코 넘기던 SNS 루머들이 갑자기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증권가 소문, 왜 하필 그 소재였을까이 영화가 다루는 핵심 소재는 '찌라시'입니다. 여기서 찌라시란 증권가를 중심으로 유통되는 비공식 정보지를 가리키는데, 공식 루트를 거치지 않은 미확인 첩보와 루머가 뒤섞인 채 은밀하게 유통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주가 조작이나 기업 스캔들처럼 민감한 정보가 담기기도 하고, 연예인의 사생활 의혹처럼 전혀 근거 없는 가십이 버젓이 '정보'로 포장되기도 하죠.감독 김광식은 이 ..
1953년, 휴전 협정이 서명되기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사람이 죽어나갔습니다. 지도 위에서 손톱만 한 점 하나인 '애록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요. 영화 〈고지전〉을 보고 나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스크린 밖으로 그 냄새가 빠져나가질 않더군요. 고지전.. 휴전 직전, 왜 군인들은 여전히 죽어야 했을까혹시 이런 의문을 가져본 적 있으신가요? 어차피 전쟁이 끝날 거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는데, 그 마지막 순간에도 왜 그토록 치열하게 싸워야 했는지요. 저도 처음엔 단순한 군사적 논리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고지전〉의 배경은 1953년 한국전쟁 말기입니다. 당시 판문점에서는 이미 휴전 협상(Armistice Negotia..
한석규와 김혜수, 두 배우가 한 지붕 아래서 서로를 속이고 감시하며 맞붙는다는 설정만으로 이미 반은 성공한 영화입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틀었을 때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았는데, 러닝타임 내내 손에 땀을 쥐면서도 혼자 웃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이층짜리 좁은 집 한 채가 이렇게 촘촘한 서스펜스의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이 앙상블, 어디서 본 적 있나요?〈이층의 악당〉은 신경쇠약에 걸린 집주인 엄마와 엉뚱한 딸이 사는 이층집에 정체불명의 소설가가 셋방으로 들어오면서 시작됩니다. 이 단순해 보이는 출발점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계속 튀어 오르는데,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감탄한 부분이 바로 앙상블(ensemble), 즉 두 주인공의 화학적 조합이었습니다. 여기서 앙상블이란 각 배..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꽂고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문득 떠올린 얼굴이 있었습니다. 이름도 흐릿하고 목소리도 기억 안 나는데, 그 장면만큼은 선명한 그 사람. 아마 저만 그런 건 아닐 겁니다. 〈김종욱 찾기〉는 그 감각을 스크린으로 정확하게 옮겨놓은 영화입니다. 인도의 낯선 골목에서 피어난 첫사랑을 십수 년이 지난 서울에서 다시 추적하는 이 로맨틱 코미디는, 보는 내내 저도 모르게 어딘가를 찾고 싶어지게 만들었습니다. 뮤지컬 원작, 스크린으로 오기까지〈김종욱 찾기〉는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합니다. 2006년 초연된 이 뮤지컬은 대학로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으며 누적 관객 수 기준으로 소극장 창작 뮤지컬 중 손꼽히는 장기 흥행작이 되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공연을 먼저 본 관객들 사이에서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