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숨을 멈추게 되는 뮤지컬이 있을까요? 저는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데스타운을 한국, 웨스트엔드에서 각각 관람하면서, 회전 무대 하나가 비극적 운명을 이토록 정교하게 시각화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포크·재즈 음악 위에 고대 신화와 현대 자본주의 서사를 얹은 이 작품, 일반적으로 '대사 중심 뮤지컬'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뮤지컬 넘버가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구조입니다. 무대 메커니즘: 회전 무대가 만들어낸 '의심의 시각화'비극을 무대에서 표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배우의 표정입니다. 그런데 하데스타운은 그 반대를 택했습니다.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이끌고 지하 세계를 빠져나오는 마지막 장면에서, 무대 바닥의 턴테이블(Turntable)이 역방향으로 천천히 회전하..
선한 사람이 악인이 될 수 있을까요? 한국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이 질문을 무대 위에서 배우의 몸으로 직접 증명합니다. 저도 극장에서 2막이 시작되는 순간, 숨이 막혀서 잠깐 손목시계를 쳐다봤을 정도였습니다. 인터미션이 끝난 직후부터 전혀 다른 공연을 보는 느낌이었거든요. 1인2역이라는 구조, 정말 그냥 '두 역할 맡기'일까요?'1인 2역'이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비용 절감이나 배우의 기량 과시 정도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프랑켄슈타인'의 1인 2역은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주연뿐 아니라 조연 전 배우에게 예외 없이 이중 배역을 부여하는 전면적 더블 캐스팅(double casting) 구조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블 캐스팅이란 단순히 공연 날짜에 따라 다른 배우가 같은 ..
솔직히 처음엔 걱정이 앞섰습니다. 화려한 무대 전환도, 대형 세트도 없다는 걸 알고 들어간 공연이었거든요. 그런데 조명이 켜지는 순간, 그 걱정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뮤지컬 시카고는 '덜어냄'으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공연입니다. 밥 포시(Bob Fosse) 특유의 절제된 안무가 어떻게 1920년대 미국의 부패한 사법 시스템을 무대 위에서 해부하는지, 직접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밥 포시가 세트 대신 선택한 것뮤지컬 시카고의 무대 구성은 브로드웨이 기준으로도 꽤 이례적입니다. 오케스트라를 객석 뒤나 피트(Pit)에 숨기는 대신, 무대 정중앙에 계단식으로 올려놓습니다. 연주자들이 배우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존재하는 셈입니다. 처음 이 배치를 봤을 때 제가 느낀 건 '생경함'이었는데, ..
뮤지컬을 보러 가서 기계 장치에 감동받은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위키드(Wicked) 내한 공연에서 1막 마지막 넘버 'Defying Gravity'를 보는 순간, 그게 바로 배우가 아닌 무대 자체에 압도당하는 경험이라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브로드웨이 연출의 기술적 정수와 음악적 카타르시스가 한 장면에 집약된 이 넘버가 왜 수십 년째 회자되는지, 직접 본 입장에서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 유압식 리프트와 역광 조명이 만든 시각적 해방감공중부양 장면이라고 하면 와이어에 매달린 배우가 어색하게 흔들리는 장면을 먼저 떠올리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공연에서 그 편견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엘파바 역 배우가 무대 중앙으로 나아가는 순간, 어디서 기계 장치가 개입하는지 전혀 눈치챌 수 없었습니다.이 장면의 핵심..
영상으로 먼저 접하고 공연장에 갔다가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한 적 있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클라이맥스 넘버 Confrontation(대결)을 유튜브로 수십 번 들었지만, 홍광호 배우가 핀 조명 두 줄기 앞에서 머리를 풀어헤치는 순간 — 그때 느꼈던 것은 영상으로는 단 1%도 전달이 안 됐습니다. 조명과 발성만으로 대극장 전체를 얼려버리는 그 무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직접 체감한 시각으로 풀어봅니다.Confrontation, 영상으로 들으면 뭔가 부족한 이유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 Confrontation을 음원으로만 들었을 때는 "좋긴 한데, 이게 왜 그렇게 유명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뮤지컬 넘버는 음악 자체로도 완결된 감동을 준다고들 하는데, 저는 이 ..
누군가를 싫어하는 데 이유가 필요할까요? 박 사장은 기택을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에게서 나는 냄새를 참기 힘들었을 뿐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는데, 그 냄새 하나가 살인의 방아쇠가 되는 순간, 좌석에서 등이 딱 굳어버렸습니다.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가 겁나서 망설이다 들어간 극장에서, 봉준호 감독이 쌓아올린 계급의 벽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칸 황금종려상이 주목한 계급의 선제가 이 영화를 보러 간 건 순전히 칸 영화제 때문이었습니다. 황금종려상(Palme d'Or)은 칸 국제영화제에서 수여하는 최고 영예의 상으로, 한국 영화 사상 최초의 수상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가 주는 막연한 거부감은 일단 접어두었습니다.막상 보고 나니 그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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